· 개봉: 2004년 02월 05일
· 장르: 액션, 드라마
· 러닝타임: 145분
· 감독: 강제규
· 주연: 장동건, 원빈
우애 깊은 형제 진석·진태 형제. 형(진태)은 동생(진석)이 공부에 집중할 수 있도록 구두닦이 일을 하며 지낸다. 평화롭던 주말 새벽 북한의 남침으로 전쟁이 나고 진석·진태 가족은 피난길에 오른다. 하지만 피난 중에 동생이 전방 행 열차에 끌려가고 동생을 빼내기 위해 열차에 올라탄 형마저 내리지 못하고 전방으로 가게 되는데...
#전쟁 #비극 #슬픔 #현충일 #6·25 #장동건 #원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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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부터 징검다리 연휴가 시작되는데요. 연휴의 마지막 날인 6월 6일은 현충일로 국토방위에 목숨을 바친 이의 충성을 기념하는 날이에요. 저희 부귀영화에서도 나라를 위해 값진 희생을 하신 모든 분께 감사의 뜻을 표하고자 <태극기 휘날리며>를 준비했는데요. 한국 역사의 최대 비극이라고 할 수 있는 6·25 전쟁을 다룬 <태극기 휘날리며>속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지 시작해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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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이제부터 <태극기 휘날리며>에 대해
낱낱이 파헤칠 거예요.
아직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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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 휘날리며>는 전쟁 속에 일어난 형제의 슬픈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동생(진석)을 위한 형(진태)의 희생, 그런 형에 대한 미안한 마음, 둘의 재회와 진태의 마지막 희생 등 우애 깊은 형제가 전쟁 속에서 겪는 일들은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하죠. 그런데 진석 진태의 이야기가 실제 6·25전쟁 속 형제를 모티브로 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영화의 모티브가 된 인물은 박규철·용철 형제로 영화 속 이야기만큼 가슴 아픈 사연이 있는데요. 그러면 박규철·용철 형제에게는 어떤 슬픈 사연이 있는지 알아볼까요?
6·25 전쟁이 일어나기 전 박규철·용철 형제는 황해도 평양군 신암면에 가족과 함께 살고 있었어요. 하지만 광복 이후 소련군에 불만을 품고 있던 형(규철)은 동생(용철)에게 가족을 부탁한 채 홀로 월남했죠. 남한에 온 형은 16연대에 신병으로 입대 후 8사단으로 편입됐는데, 훈장까지 받은 훌륭한 군인으로 전쟁이 발발하자 소위로 전시 임관해요. 그 시점, 동생 역시 강제 징용돼 북한 8사단 소속 전사(이등병 격)로 전쟁에 참여하게 됐죠. 슬프게도 양측의 8사단은 6·25전쟁을 치르면서 여러 차례 부딪혔던 부대였어요. 이들 형제는 상대편에 형제가 있는 줄을 모른 채 총부리를 겨누고 총을 쏘고 있었던 거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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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부대의 치열한 전투 속에서 남한의 8사단이 승기를 잡고 북상하던 상황. 어느 날 밤 형인 박 소위는 어머니가 “불효자식놈”이라고 호통을 치는 꿈을 꿨고 엉엉 울며 잠에서 깼다고 해요. 이튿날 공격 중이던 박 소위는 도망치던 적병이 재빠르게 땅바닥에 엎드리는 것을 목격했고, 그를 생포하기 위해 “이봐! 절대 죽이지 않을 테니까 도망치지 말고 그대로 있어. 만일 내 말을 듣지 않고 도망치다간 너희 독전대에게 사살당한다.”라고 했어요. 그때 힐끔 돌아보는 적군의 얼굴을 본 박 소위는 크게 놀랐어요. 자신의 앞에 엎드려 있는 적군이 바로 동생 용철이었던 거죠. 동생을 알아본 박 소위는 “야! 너 용철이 아냐. 야 인마! 나야 니 형이야. 여기서 너를 만나다니. 하늘이 우리를 도와주셨구나”라고 말했고 두 사람은 빗발치는 총탄 속에서 서로를 끌어안은 채 눈물을 흘렸어요. 다행히도 형이 동생을 죽이는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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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동생은 박 소위의 소속 지휘관의 배려로 8사단으로 입대해 형과 함께 전쟁을 치르게 됐다고 해요. 이 형제의 이야기는 박 소위의 전우 안만옥 상사가 1989년 전쟁기념사업회의 한국전쟁 참전 후기에 공모해 입상하면서 세상에 알려졌고, 이후 서울 전쟁기념관에 형제의 동상까지 세워졌어요. 그 동상이 바로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앞마당에 세워진 11m 높이의 ‘형제의 상’으로 동상 속 형제는 서로 다른 군복을 입고 부둥켜안고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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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아픈 과거가 있죠. 1950년에 일어난 6.25전쟁이에요. 영화<태극기 휘날리며>는 이 6.25전쟁의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요. 실제 이 시대를 더 상세하게 설명해 드리려고 해요. 어떠한 일들이 있었는지 영화 속 실제 상황들을 요약해서 알려드릴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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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4시경 북한군은 암호명 ‘폭풍 224’라는 사전 계획으로 기습 남침하게 돼요. 당시 북한은 선전포고도 하지 않아 전쟁의 전날까지도 국민들은 평안한 일상생활을 하고 있었고, 일주일 중 가장 방어가 허술한 일요일이어서 많은 병력들이 휴가로 인해 부대가 비어 북한군을 막는 중요한 시기를 놓치게 돼요. 북한군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군사력으로 대구와 부산만 남은 상황에 이르게 되지만 1950년 7월 유엔군이 참전하면서 9월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인천과 서울을 탈환하게 됩니다. 그 기세로 남한군은 평양을 지나 함경북도까지 탈환하며 진격을 했지만, 예상치 못했던 중공군 30만 명의 참전으로 1951년 1월 4일 다시 후퇴를 하게 되며 평택과 삼척까지 재점령을 당하게 됩니다. 하지만 남한군은 1951년 3월 15일 재반격을 하여 서울을 재탈환하고 치열한 전투를 했지만 전투가 시작된 지 처음으로 7월 10일 휴전회담이 개최되었어요. 이렇게 이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희생자와 이산가족들이 생기게 되고 대한민국은 휴전선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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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연맹 학살사건
보도연맹 학살사건은 6.25 전쟁 기간 중 벌어진 비극적인 민간인 학살 사건이에요. 전쟁의 막바지 휴전협상 중에도 전쟁은 계속되고 있었는데,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국군이 밀린 이유를 보도연맹이라는 단체로 손꼽게 됐어요. 보도연맹은 남한에 있던 사회주의자들을 전향시키기 위해 만든 단체였는데 변질되어 인원수를 채우기 급했고, 쌀과 고무신을 주며 이름 세 글자로 가입을 시켰어요. 이승만 정부는 보도연맹원들의 이적 행위에 대한 '처리'를 명령했고 대한민국 국군‧경찰들은 보도연맹증을 갖고 있는 사람들과 리스트를 찾아내 학살을 했다고 해요. 심지어는 이름을 올리지도 않았던 평범한 시민들까지도 죽임을 당했다고 합니다. 이 일로 인해 약 10만 명에서 최대 120만 명이 학살되었는데, 이는 엄연히 대한민국의 대표적 학살이자 잔인무도한 전쟁범죄라고 볼 수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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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는 15세 관람가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잔혹한 장면이 많아요. 지뢰 혹은 총에 의해 다리나 팔이 절단되거나 머리가 날아가기도 하고, 장기가 나오기도 하는 등 잔인한 장면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거부감을 느낄 정도였죠. 이는 강제규 감독이 ‘전쟁 그 자체’를 보여주고자 잔인하고, 무서운 전쟁의 참상을 리얼하게 반영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때문에 전투 장면이나 잔인한 장면 외에도 부족한 끼니,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전투 때문에 불편한 잠자리, 피폐해지는 사람의 정신 등 전쟁으로 인한 열악한 환경까지 디테일하게 묘사해냈어요.
실제로 강제규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들은 전쟁터의 무서움을 생생하게 반영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고 해요. 그 결과, 세밀한 고증을 구현해 내는 데에는 2만 5천여 명의 엑스트라, 20여 곳이 넘는 로케이션 장소, 2만여 벌의 군복 제작, 실제 크기의 증기 기관차 및 탱크 제작 등 순제작비만 무려 146억 원을 들었다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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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영화는 9개월 동안 대부분 야외 촬영으로 진행되었는데 이때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고 해요. 장마가 너무 길어져 한 달 동안 촬영을 열 번 정도 밖에 못한 적도 있고, 비 때문에 400여 명의 출연자가 동원된 대규모 촬영 장면이 직전에 엎어지기도 했으며, 기상 변화로 인해 눈을 치웠다 다시 쌓기도 하고, 심지어 태풍 ‘매미’까지 오면서 세트 손해만 3억 원 정도 났었다고 합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영화 속에서도 눈에 띄었던 남하와 북진 그리고 다시 교착으로 이어지는 ‘낙동강 방어선 전투’, ‘평양 시가지 전투’, ‘두밀령 고지 전투’. 이렇게 3가지 장면의 비하인드에 대해서 이야기해 볼게요.
후퇴를 거듭한 국군이 최후의 보루인 낙동강 방어선에서 필사의 전투를 벌이는 ‘낙동강 방어선 전투’ 장면은 총 120여 회 이상의 대형 폭발이 이루어지는 고난도의 촬영이었다고 해요. 1,000여 명의 훈련된 엑스트라와 전문 스턴트 연기자들이 동원되었으며, 적군의 무수한 폭격을 담아내기 위해 각종 대포와 폭격기 등으로 2주 동안이나 몇 번이고 촬영을 거듭하였다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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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상륙 후 북으로 진군을 시작한 국군이 평양 시가지에서 대규모 적군과 만나 시가지 전을 벌인다는 설정으로 이루어진 ‘평양 시가지 전투’ 장면은 경남 합천의 2만 평 부지에 세운 평양 세트 제작비만 무려 17억 원에 달한다고 해요. 게다가 제작진들이 해당 전투의 자료를 확보하는 데 가장 애먹었던 장면인 만큼 고증과 상상으로 세트를 만들어야 했다고 해요. 하지만 태풍 ‘매미’로 인해 20여 채의 상점이 날아가는 등 몰아친 풍우로 인해 세트가 일부 사라져, 당초 50여 동을 세우려던 구상을 실현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는 말이 있듯이 세트의 미흡한 복구를 감추고자 일부러 땅을 파헤쳐 폭격으로 폐허가 된 도시의 느낌을 강조하였고, 인물을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의 거친 핸드헬드로 뒤쫓아 촬영하여 긴박함을 주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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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에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전투를 재구성한 ‘두밀령 고지 전투’는 백마고지처럼 밀고 밀리는 싸움이 치열했던 당시의 고지를 염두에 두고 설정된 장면이라고 해요. (마지막 전선에서 형제가 대면하게 된 장면이죠) 실제 촬영은 경남 합천의 황매산에서 찍었는데, 경사가 무려 45도로 서 있기조차 힘든 곳이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사격전이 아니라 1차원 적인 무기로 적을 제압하는 육박전이었기에 주조연 배우부터 엑스트라까지 오랜 기간 총검술 훈련을 받았음에도 3주 간의 긴 촬영 기간 동안 부상 사고가 하루에 적어도 3명씩은 송출했다고 합니다. 이 장면은 무려 15,000발의 실제 공포탄과 3,000여 명의 엑스트라, 500여 명의 전문 스턴트맨이 투입된 대규모 촬영이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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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 휘날리며>는 대흥행을 기록한 영화인 만큼 그 이면에는 감독과 배우의 많은 노고가 있어요. 지금은 정상급 스타들이지만 당시에는 다양한 배우들이 우정 출연 격으로 등장하여 영화를 빛냈어요. 또한 천만 관객을 기록한 6.25전쟁의 대표 영화이지만, 기획 당시에는 지금과 같은 흥행을 예상하지 못했을 거예요. 그도 그럴 것이 크랭크인에 들어가기도 전에 많은 어려움에 부딪혔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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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규 감독의 이전작인 <쉬리>에서의 인연으로 카메오 출연한 최민식은 인민군 대좌 역으로 등장했어요. 짧은 순간이었더라도 최민식 특유의 카리스마가 어우러져 카메오였지만 인상 깊은 모습을 보여주었죠. 동방신기의 영웅재중도 출연했어요. 단역 알바로 출연한 영웅재중은 데뷔 전 연습생 시절 돈을 벌기 위해 <태극기 휘날리며>의 중공군 역과 유해발굴단 역으로 보조출연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해요. 그리고 보도연맹 사건의 청년단장 역으로 김수로가 우정 출연하기도 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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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렇게 다양한 배우가 등장하기 전에 영화 기획 당시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어요. 당시 충무로에서 강제규 감독의 평판은 그렇게 좋지 않았다고 해요. 이전 영화들의 흥행 참패로 감독 및 제작자로서의 자격에 대해 다들 의구심을 품고 있었거든요. 그런 배경에서 강제규 감독이 기획하던 130억 원 규모의 영화는 흥행은 물 건너 가듯이 뻔했어요. 당시에 100억 원이 넘는 블록버스터 영화들도 모두 참패하는 와중에 130억 원 규모는 무리수라고 여겨졌거든요. 이처럼 규모가 크다 보니 준비 기간도 예정보다 길어진 점이 문제로 떠올랐어요. 스토리보드와 시나리오 작업 담당자도 바뀌게 되었고요. 그리고 준비 기간이 길어지면 캐스팅된 배우들도 계약 위반을 통보하고 다른 작품을 알아볼 우려가 있었죠.
또한, 전쟁영화라는 장르 탓에 여성 관객의 관심이 낮을 것이라는 투자사의 우려에 적절한 투자사를 구하지 못했다고 해요. 이런 이유로 국방부의 지원을 필요로 하는 상황에서 영화 시나리오를 제시했으나 국방부에서는 엄격한 기준으로 몇 가지 장면의 수정을 조건으로 요구했어요. 대표적으로 진태와 진석의 강제 징집되는 설정을 자원입대로 바꾸고, 보도연맹 사건을 영화에서 삭제하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국방부의 요구대로 제작한 영화는 선전 영화와 다름없을 정도로 편파적일 것이 뻔했기 때문에 결국 국방부의 지원 없이 많은 장비와 의류를 제작해서 촬영했다고 해요.
이렇게 <태극기 휘날리며>는 많은 어려움과 부정적인 시선에도 불구하고 천만 영화 전쟁영화라는 역대급 흥행을 기록했어요. 당시 주연 배우들이 기획 기간이 길어짐에도 감독을 믿고 꿋꿋이 기다렸다고 하는데 그 결과로 이런 영화가 나왔으니 신뢰로 탄생한 영화라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이렇게까지 대규모로 준비했는데 흥행에 실패했다면 그 여파는 실로 엄청났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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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는 전쟁의 아픔을 표현하며 잊지 못할 감동을 선사했는데요. 모두의 기억 속에 아직도 남아있는 명장면이 있을 거예요. 현장감과 사실감이 잘 나타난 전쟁 장면부터 눈물이 나도록 안타까웠던 참혹한 현실, 그리고 예상하지 못한 형제의 재회까지. 님은 어떤 장면이 떠오르시나요? 그 당시 천만 관객을 불러일으켰던 영화 속 명장면에 대해 저희 부귀지기가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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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터에서 적으로 만난 형제의 재회 장면
이 장면에서 울컥한 분들 많으실 것 같아요. 바로 마지막으로 이어지는, 형제의 재회 장면입니다. 서로를 위한 마음이 각별했던 형제를 적으로 만든 참혹한 현실이 슬프게 다가온 부분이었어요. 처음에 형이 동생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저 적을 상대해야 하는 장면은 굉장히 인상 깊었죠. 당시에 그럴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던 '전쟁'이라는 상황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또 전쟁이 만들어낸 인간의 광기를 목격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이 장면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마지막 동생이 가는 길을 목숨 바쳐 지켜주는 형의 모습은 정말이지 전쟁 영화 중 손에 꼽히는 명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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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후 유골로 발견된 진태와의 눈물의 재회 장면
위에서 언급된 장면과 이어지는 장면이기도 한데요, 결국은 수많은 탄피 사이로 쓰러진 형 진태의 모습이 유골로 변하고, 50여년이 지난 후에 발견되죠. 이 장면에서 유품을 통해 진태를 알아본 동생 진석이 오열하는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저는 이 장면을 통해서 이 비극이 현재로도 이어지고 있고 우리의 현실이라는 것도 느껴졌어요. 같은 형제끼리, 같은 민족끼리 총을 겨누며 생긴 비극이 오늘날에도 우리의 아픈 과거이자 현실이 되었다는 점이 참 가슴이 아파서인지, 영화 속 이 장면을 두고두고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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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대한 다양한 생각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 🤗
부귀영화의 영화 놀이터에서 함께 이야기해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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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도
★★★★ (4.0/5)
할아버지 진석의 유해 앞 오열은
내 인생 최초의 눈물 버튼이었다
퓨리
★★★★ (4.0/5)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비극,
오늘 봐도 눈물나는 명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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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일 : 국토방위에 목숨을 바친 이의 충성을 기념하기 위한 날. 6월 6일 현충일을 맞아 준비한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이 작품은 전쟁의 사실감을 잘 표현하고, 눈물을 자극하는 가족애를 그리면서 많은 사랑을 받았죠. 2004년 개봉 당시 최단기간 1000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역사, 전쟁 영화의 한 획을 그은 작품이었어요. <태극기 휘날리며> 외에도 우리나라의 역사, 이야기를 담은 작품들은 참 많이 있습니다. 애국, 하면 생각나는 작품이 있으신가요? 우리의 지금을 위해 온 힘 다해 지켜준 분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들! 저희 부귀지기가 세 가지 작품을 소개할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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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
잘 만든 한국 영화하면 떠오르는 작품이 있죠. 바로 민주 항쟁의 이야기를 담은 <1987>입니다. 마침 다가오는 6월 10일은 범국민적 민주화운동인 민주 항쟁을 기리기 위한 기념일이기도 해서 더욱 생각나더라고요. 이 작품은 1987년, 경찰 조사를 받던 대학생이 사망하면서 일어났던 민주화 운동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 당시의 일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도, 직접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많은 영감을 주었는데요. 그때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보여주면서 작위적이지 않게 우리를 그 시절로 연결시켜주었어요. 영화를 보면 가슴 아팠던 현실에 울컥함이 찾아오는데요. 모든 것이 변화하던 시기, 모두가 뜨거웠던 1987년을 만나러 가보시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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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전>
625 전쟁 막바지, 최전방에 위치한 가상의 고지인 애록 고지를 배경으로 하는 전투를 그린 영화 <고지전>. 휴전 협정이 난항을 겪던 중, 간첩 활동이 의심된다는 애록 고지로 발령을 받은 은표는 부대원들의 초월한 듯한 행동에 이상함을 느낍니다. 헤어졌던 전우도 180도 다른 모습으로 다시 만나게 되는데요. 이런 상황에서 휴전 협정 이후 12시간 후 효력 발생이라는 사항 때문에 최후의 전투가 이 애록 고지에서 벌어지게 됩니다.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는 비극, 최후의 전투에서 우리가 얻게 된 건 과연 무엇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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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 투 동막골>
동명의 연극을 원작으로 하는 전쟁 영화이자 코미디 영화인 <웰컴 투 동막골>. 사실 웰컴 투 동막골은 반공 영화 열풍이 끝나고, 전쟁 영화가 시들어가던 시절에 신선하게 다가와 흥행을 이루어 낸 영화죠. 여타 전쟁 영화와는 다르게 코미디와 휴머니즘을 통해 반전 요소를 나타내고 있는 영화입니다. 전쟁이 난 줄도 모르고 살아갈 정도로 평화로웠던 동막골에 나타난 연합군과 한국군, 그리고 인민군까지. 이들이 마을을 지키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늘은 동막골에서 따뜻함과 가슴아픈 역사를 되새겨보는 건 어떨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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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6일은 현충일이기도 하지만
<트랜스포머:비스트의 서막>이 개봉하는
날이기도 해요.
매 시리즈 다양한 변신 로봇으로
꾸준히 극장을 찾아오는 트랜스포머!
그래서 다음 주 부귀영화는
전설의 시작이었던
<트랜스포머1>을 살펴보고자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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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부귀영화, 어떠셨나요?
아래 버튼 클릭으로 오늘의 부귀영화에 대한 피드백을 남겨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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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우리는 다음주에 새로운 영화로 다시 만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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