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영화는 보통 두 가지 요소로 요약할 수 있어요. 하나는 큰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압도적인 스케일, 다른 하나는 전쟁의 참혹함 속에서 드러나는 인물 간의 감정이에요. ‘라이언 일병 구하기’나 ‘태극기 휘날리며’ 같은 작품이 그 대표적인 예죠.
그런데 2011년 개봉한 장훈 감독의 <고지전>은 이 공식을 거의 완전히 벗어난 작품이에요. 전쟁이 아닌 '전장'을 보여주겠다는 선언처럼, 이 영화는 우리가 전쟁영화에서 기대해온 감정의 구조나 극적인 스펙터클을 의도적으로 비껴가요. 그러면서도 이상하리만치 전쟁이라는 주제에 더 가깝게 다가서는 느낌을 주고 있죠.

<고지전>은 한국전쟁의 마지막 국면, 휴전 협상이 진행되던 1953년의 고지 쟁탈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흔히 한국전쟁은 6.25 발발과 1.4 후퇴, 그리고 1953년 7월의 휴전 협정으로 기억되곤 하지만, 그 사이 2년 넘는 기간 동안 수많은 고지가 점령되고 탈환되기를 반복하며 전선은 소모전의 양상을 띠었죠. 영화는 싸움이 끝나가는 시점이지만 가장 치열했던 마지막 7개월을 비추고 있어요.

전쟁의 목적은 흐려지고, 병사들은 싸움 그 자체에 지쳐가며, 생존이라는 본능만이 남아있던 당시의 모습은 영상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나요. 모노톤의 색감은 철저히 배제되고, 화면 가득 펼쳐진 황토색 흙, 푸르게 뚫린 하늘이 전장을 더 리얼하게 만들어요. 화려한 전투 동선이나 영웅적 전과는 없고, 대신 전투의 피로와 공포, 지루하고도 무의미한 고지 쟁탈이 반복되는 풍경이 이어져요. 카메라는 화려하게 움직이지 않고, 고지를 기어오르는 병사들의 느린 몸짓과 공포에 질린 얼굴을 담아냄으로써 '누구를 위한 싸움인가'라는 질문을 시각적으로 반복하죠.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이 영화에는 뚜렷한 영웅이 없고, 대의나 희생을 통해 눈물을 유도하지도 않았다는 거예요. 악어중대라는 부대의 병사들은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지조차 헷갈리는 혼란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내는데요. 모르핀에 기대고, 죽은 동료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고, 때로는 죄책감과 생존 사이에서 무기력하게 흔들려요. 그렇게 반복되는 전투와 전우의 죽음 속에서 병사들은 점점 인간성을 잃어가죠.

“우리는 적과 싸우는 게 아니라, 전쟁과 싸우는 거야”라는 대사처럼 실제로 싸움의 명분은 희미해지고, 남은 건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뿐이었죠.

이처럼 <고지전>은 기존의 한국 전쟁영화들과 분명히 선을 긋고 있어요. 형제애를 멜로드라마로 그렸던 <태극기 휘날리며>, 판타지로 남북의 화해를 희망했던 <웰컴 투 동막골>, 혹은 어린 학생병들의 희생을 부각한 <포화 속으로>처럼 감정의 극단으로 몰고 가는 영화들과 달리, <고지전>은 차분하게 묻고 있어요. 전쟁이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왜 싸워야 했을까. 그리고 그 질문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쉽게 사라지지 않아요.

<고지전>은 마치 전쟁을 정지된 이미지처럼 붙잡아 두고 오래 바라보게 해요. 그래서 이 영화는 블록버스터도 아니고, 영웅 서사도 아니지만, 오히려 가장 전쟁영화다운 전쟁영화로 남게 되는 것 같아요.

2011년 개봉한 영화 고지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시나요? 정전 협정을 앞둔 마지막 순간, ‘악어중대’라는 부대의 시선을 따라 전쟁의 실상을 그린 이 영화는 수많은 관객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 속에는 우리가 다시 들여다봐야 할 ‘사실’과 ‘허구’의 경계가 있어요. 오늘은 그 이야기를 다뤄보고자 해요.

영화의 오프닝처럼 묵직한 이 문장, 전쟁이 남긴 흔적은 단순히 무너진 건물이나 잿더미만은 아니죠. 고지전 속 악어중대 대원들은 과거의 한 작전, 포항철수작전에서의 트라우마를 품고 있습니다. 영화는 신일영(이제훈 분) 중위가 당시 상륙정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아군을 향해 총을 겨누는 극적인 설정을 담고 있는데요. 하지만 실제 포항철수작전은 1950년 8월, 군인과 민간인을 포함한 약 2만 명을 무사히 철수시킨 매우 성공적인 작전이었어요. 당시 사용된 상륙정도 영화처럼 대한민국 해군의 것이 아니라 일본산 LST 4척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이 장면은 극적 장치를 위해 설정된 픽션이라는 걸 알고 볼 필요가 있어요. 사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일수록, 이런 디테일 하나하나가 역사를 왜곡할 수 있거든요.

또 한 가지, 영화에서 악어중대는 휴전 직전 북한 인민군과 마주쳐 전투를 벌이는데요, 사실 그 당시 주력 적군은 북한군이 아니라 중공군(중국군)이었습니다. 1·4후퇴 이후 북한군은 병력 충원이 어려워졌고, 1953년 여름 벌어진 금성·백마·화천 전투 등에서도 국군은 중공군과 치열한 고지전을 벌였어요. 그런데 영화에서는 인민군 중대장 ‘현정윤’(류승룡 분)이 주요 적으로 등장하죠. 이 역시 극적 구성상의 선택이겠지만, 현실과는 거리가 있는 설정이라는 걸 기억해 두면 좋겠습니다.

고지전은 훌륭한 영화입니다. 전쟁이 남긴 상처, 인간의 갈등, 평화를 향한 간절함을 가슴 아프게 보여주죠. 하지만 영화는 영화이고, 역사는 역사입니다. 우리가 감동을 받을 수는 있지만 그 감동이 잘못된 인식을 심지 않도록 진실을 알고 기억하는 자세는 꼭 필요합니다. 전쟁을 겪은 수많은 이들의 희생이 그저 장면 하나로만 소비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가 더 깊이, 더 진실하게 기억하는 노력,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되어야겠죠.

1953년 7월 27일 오전 10시 12분, 판문점에서 정전협정 서명이 완료되었습니다. 그 역사적인 순간은 의외로 아주 짧고 조용하게 끝났어요. 수석대표들은 싸인을 마치고, 인사 한마디 없이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고 하죠. 그런데 영화 속에서는 이 소식을 들은 병사들이 “드디어 집에 간다!”며 들뜨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곧 이어진 상부의 지시는 충격적이죠.

“휴전은 오후 10시 발효되니, 그 전까지 고지를 다시 탈환하라!”

이 설정은 협정문 제63항, 즉 “휴전 발효는 27일 오후 10시부터”라는 조항에서 착안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실제 전선에서는 정오 무렵부터 전투가 거의 멈췄고, 군인들은 휴전 소식을 들은 뒤 서로의 전사자 시신을 수습하는 일에 집중했답니다. 녹색 전투복의 국군과, 황색 전투복의 중공군이 서로 얼굴이 보일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조용히 시신을 수습하던 장면은 누구보다 전쟁의 끝을 원했던 병사들의 심정을 고스란히 보여주죠.

<고지전>은 제작비 100억 원이 들었다고 합니다. 영화를 보면 전투신을 찍기 위해서 많은 노력이 기울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전쟁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 어떤 과정을 겪었을지 한 번 확인해 봐요.

킹스맨

★★★★ (4.0/5)

그간 보지 못한 6.25전쟁의 새로운 시간대와 관점

프로도

★★★★ (4.0/5)

희생 위에 세워진 자유

심바

★★★☆ (3.5/5)

올해는 6.25전쟁이 발발한지 75주년이 되는 해예요. 지금은 상상할 수 없지만 당시의 전쟁은 참혹함 그 자체였을 텐데요. 한국 영화 중에는 이처럼 전쟁의 참혹함과 인간의 고뇌를 깊이 그린 작품들이 여럿 있어요. 부귀지기들이 추천하는 전쟁 영화와 함께 당시 숭고히 희생하신 순국선열을 기리는 시간을 가져봐도 좋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