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의 기억법>은 원작 내용을 담았지만 변형을 그려내며 영화만의 매력을 보여줬습니다. 소설 속 인물이 실제 등장한 듯한 느낌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일부 있을 정도로 스릴러의 분위기를 잘 살려냈죠. 관객들은 이 영화의 어떤 점을 인상 깊게 관람했을까요? 영화에 담긴 이야기와 연출 방식, 연기 등 작품 속 매력 포인트를 확인해 보아요.

이 영화는 기억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기억이란 뇌에 받아들인 정보와 경험을 간직하다 도로 떠올려내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에게 기억은 하나의 순간을 추억할 수 있고 자신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이러한 기억을 바탕으로 우리의 인생이란 기록을 차곡차곡 쌓을 수 있는 것이죠. 그렇다면 기억을 잃게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을 의미할까요? 지금까지 형성된 자신 자체를 잃게 될 수 있다는 것이죠.

병수는 기억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고장이 난 뇌로 혼란스러운 시간을 지내고 있죠. 떠오르는 사실과 지난 경험의 시간이 진짜였는지 의심을 하게 되는 것이죠. 이렇게 주인공은 기억이 담긴 시간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원작에서도 이러한 말이 나와요. ‘무서운 것은 악이 아니라 시간이다.‘ 자신이 만들어낸 시간 속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모르는 것은 정말 공포감을 선사하죠. 살인자 병수는 나이를 들고 기억이 사라져가는 병에 걸리면서 두려움에 직면하게 됩니다. 어려울 것이 없던 시기를 지나 ‘나’라는 자체를 믿을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죠. 딸을 잃게 될 수 있다는 공포감과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한 행동들을 보면서 영화를 깊게 관람할 수 있었어요.

살인자가 기억을 잃게 되는 것. 이 설정을 잘 구현해낸 것은 감각적인 연출도 굉장히 큰 역할을 했습니다. 어느 인터뷰에서 감독은 “색채나 미장센에 대한 욕구는 최대한 억눌렀다”라고 했죠. 하지만, 영화 속 미장센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는 평가가 많았습니다. 무책 색의 색 표현과 안개와 같은 연출적인 부분이 영화의 특유의 분위기를 만들어냈죠.

오프닝 시퀀스 또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은 부분입니다. 일반적으로 영화의 첫 장면은 배경을 설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살인자의 기억법>에서는 내용 진행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앞으로의 전개가 예고되는 부분으로 첫 장면을 구성했습니다. 처음 병수의 표정에 주목해 볼 만합니다. 그의 찡그린 표정은 기억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책에서는 1인칭으로 서술되어 있는 것에 반해, 영상으로 표현하기 위해 표정을 활용한 것이죠. 살인자의 느낌을 주기에도 탁월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하얀 운동화를 쳐다보는 장면이 나옵니다. 병수에게 하얀 운동화는 살인자라는 특성을 불러일으키는 요소 중의 하나입니다. 하얀 운동화를 통해 아버지에 대한 증오로 그를 살인하게 만드는 소재로 등장하죠. 살인자라는 정체성을 드러내는 연출적 의도였습니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소설을 원작으로, 원신연 감독이 책을 읽고 영화화를 결심했다고 해요. 원작이 있는 만큼 기존에 충실하기도 했지만 인물이 바뀌거나, 설정에 변화를 주는 등 다른 부분도 많은데요. 실제로 감독이 “소설에 가까우면서 먼 영화”라고 말했을 만큼이에요. 그래서 원작과의 대표적인 차이점이 무엇이 있는지 살펴봤어요.

소설 김병수 vs 영화 김병수

과거 연쇄살인범이었던 김병수는 이제는 알츠하이머병에 걸려 기억을 잃어가는 인물이에요. 그 과정에서 딸인 은희에게 접근한 태주를 경계하면서 예전 살인자의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는데요. 이처럼 매력적인 설정의 병수는 소설과 영화 상관없이 큰 설정은 같지만 각자가 지닌 관점은 달라요. 소설 속 병수는 살인을 마치 하나의 완성된 작품이라 생각하며 살인을 저지르는 인물이에요. 그에 반해 영화의 병수는 사회악을 청소하는 의미에서 살인을 저지르며 정당한 명분이 있다고 생각하죠.

싸우는 부녀 vs 살가운 부녀

소설에서 병수의 딸인 은희는 진작에 병수가 친부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어요. 어렸을 적 혈액검사를 통해 알게 되면서 은희는 학창 시절 왕따와 갖가지 소문에 시달리게 되는데요. 그래서 병수와 은희는 애틋한 관계라기 보다 사사건건 대립각을 세우는 관계로 비추어져요. 이에 반해 영화의 병수와 은희는 서로 강한 유대감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그래서 태주로부터 은희를 지키겠다는 병수의 굳은 결심이 관객으로 하여금 감정이입을 할 수 있었어요.

소설에는 없는 영화 속 인물들

원신연 감독은 소설에서 비중이 없거나 아예 새로운 인물들을 추가했어요. 병수의 오랜 친구인 파출소 소장 병만과 병수와 같은 문화센터를 수강하는 연주는 소설에서는 각각 ‘오 형사’와 ‘이름 없는 수강생’으로 등장하였어요. 그리고 병수의 누나인 마리아는 영화에만 등장한 인물이에요.

• 결말이 26개? 원작의 매력에 푹 빠졌던 원신연 감독은 원작의 기둥을 그대로 두고 세세한 뼈대까지 조심스레 살을 발라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바꾸고 재배치하며 영화를 만들어냈다고 해요. 이 과정에서 수많은 요소들이 만들어졌고 빠짐없이 담아내는 과정에서 26개나 되는 결말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 설경구는 시나리오를 건네받는 그날 바로 출연을 결정했다고 해요. 섣불리 시나리오를 건네지 못하는 원신연 감독에게 설경구는 “작품을 위해 배우에게 절대 배려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새로움을 끌어낼 수 있는 감독을 만난다는 것이 배우에게 가장 큰 행복”이라며 즉석에서 출연 의사를 전했다고 합니다.

• 반면에, 오달수는 설경구의 전화를 받고 나간 술자리에서 원신연 감독까지 만나 시나리오도 받지 못한 채 얼결에 캐스팅을 수락했다고 해요.

• 원신연 감독은 연쇄살인범 ‘병수’ 캐릭터에 보다 강렬한 인상을 심기 위해 살을 빼거나, 찌우는 외모의 변화를 고심했지만 급격한 체중 변화는 건강과 연관된 문제이기에 설경구에게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다고 해요. 이를 두고 설경구는 “분장은 배우가 완성하는 거다”라며 바로 체중 감량에 나섰다고 합니다.

• 원신연 감독은 소설을 읽고, 시나리오를 쓰며 떠올렸던 이 상상 속 도시에 ‘강화시 애월읍’이라는 가상의 이름을 붙이고 주요 공간들을 지도에 그려나갔다고 해요. 그리고 이후 제작진은 원신연 감독이 만든 가상의 지도를 보며 적합한 이미지의 도시를 찾아 전국을 헤맨 결과, 평택, 파주, 강화, 대전, 광주, 장흥, 순천, 김제, 군산, 전주, 김해 등 10여 개의 도시를 영화 속 주요 공간 속에 녹여냈다고 해요.

• 액션 씬에 있어 화려한 기술보다 캐릭터의 감정을 중시했다고 해요. 헨드핼드 촬영보다 원씬 원테이크로 정적인 느낌을 강화해 배우들이 표현하는 감정의 깊이가 보다 잘 드러나도록 했는데요. 단순히 치고 받는 몸싸움보다, 서로에 대한 의심과 경계로 얼룩져 얽히고 설킨 감정을 담아냈다고 해요. (연쇄살인범 ‘병수’는 과거의 살인 방식대로 도구 없는 맨손 액션을 보여주는 반면, ‘태주’는 스카프, 벨트 등 다양한 도구를 사용하게 만들어 두 사람의 대결 방식에 극명한 차이를 부여한 점도 재밌는 포인트랍니다.)

• 그가 캄캄한 터널을 지나 철로를 홀로 걷는 오프닝은 본래 설경구의 영원한 명장면 <박하사탕>의 "나 돌아갈래" 신 속 충북 충주의 철로를 섭외하고 싶었다고 해요. 하지만 기차가 워낙 자주 다니는 공간이라 촬영 허가를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대신 지금의 원신연 감독을 있게 한 단편 <빵과 우유>를 찍은 강원도 정선의 철로에서 촬영을 진행했다고 해요.

<살인자의 기억법>의 일반적으로 본편에서 삭제된 일부 장면을 추가해서 개봉하는 감독판과 차이를 가집니다. '살인자의 기억법: 새로운 기억'은 본편과 다른 결말로 놀라움을 전했는데요. 원신연 감독은 “원작을 해체하고 재창조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요소들과 구조가 만들어졌다”라고 인터뷰했는데요. 본편과 다른 구조, 내용으로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킨 것이죠. 본편과 다른 감독판의 결말, 님은 어떤 결말이 더 마음에 드시나요?

일반판과 감독판 모두 각자의 매력이 느껴져서 좋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꽉 닫힌 결말을 좋아하기에 명료한 감독판이 더 마음에 들었어요. 기존의 혼란스러움, 의심과 같은 감정을 통한 긴장감은 덜 하지만 의도적이고, 적나라한 연출과 포커싱은 또 다른 긴장감을 만들어냈던 것 같아요. 명확한 캐릭터의 동기와 의도는 의미를 파악하고, 고심하게 만들었던 전과 달리 명확하게 정의된 여정 속에서 큰 불안 없이 보는 강렬한 범죄 영화였어요. 하지만 아슬아슬하고, 복잡한 서사로 구성되어 있는 영화에 더 흥미를 느끼신다면 저와 생각이 다르실 것 같네요!

킹스맨

★★★☆ (3.5/5)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모두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프로도

★★★★ (4.0/5)

모든 것을 의심하게 만드는 영화

심바

★★★☆ (3.5/5)

요즘 영화들을 보면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가 많이 나오고 있는 것 같아요. 그만큼 보장된 시나리오이다 보니 원작에 감독의 의도가 더해져 원작과는 또다른 매력의 영화가 탄생하죠. 소설도 마찬가지인데요. 그래서 이번 위클리 영화 소개는 한국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를 가져와 봤어요! 이번 주말 영화 한 편 보고 싶다면 이 영화들은 어떠신가요?